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검은 사서(섬의 궤적 3) (문단 편집) == 검은 사서 사본 ① 『사자전역ㆍ발발』(칠요력 947년) == 칠요력 947년, 황제 바리우스 5세의 서거와 동시에 제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'''"내란"'''이 막을 올렸다. 당시의 황제인 바리우스 5세는 호색가였다고 하며, 여러 명의 비와 측실을 거느리며 살았다고 전해진다. 그러나 이 비들은 제국 각지의 대귀족 출신으로, 이는 제국 대귀족들의 패권다툼을 여실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. 그리고 황제가 서거한 날로부터 며칠 후, 정비의 자식이었던 황태자 만프레드가 누군가의 손에 암살당했다. 그 직후 제 2비의 자식이었던 제 4황자 올트로스가 무력으로 제도 헤임달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철저히 숙청한 후, '''"즉위"'''를 선언하며 황제를 자칭했다.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를 달리하는 다른 세 명의 황자들도 그들의 어머니를 배출한 대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'''"즉위"'''를 선언. 이로써 5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내란 - '''《사자전역》'''의 막이 올랐다. 당초에 각 진영의 전력은 비등비등했으나, 후세에 '''"위제'''(僞帝)'''"'''라 불리게 되는 올트로스 황자의 진영은 제도에 봉인되어 있던 '''"어느 존재"'''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. 과거에 마룡을 토벌했으나 마룡의 피를 뒤집어쓰고 저주를 받은 진홍빛의 기사 '''《테스타=로사》'''. '''"천의 무기를 지닌 마인"'''이란 이명을 지닌 그 존재에 힘입어 올트로스 진영은 압도적인 무력을 손에 넣고, 강력무쌍하기로 알려진 제 5황자 군나르의 군세를 격파했다. 그 기세로 다른 진영도 삼켜버릴 듯 했으나, 같은 시기 막내동생인 제 6황자 루키우스의 진영에도 움직임이 있었다. 새로운 '''"거대한 기사"'''인 '''《자줏빛 기사》'''가 루키우스 진영에 가담한 것이다. 루키우스 황자는 그 힘을 갖고 책모가로 알려진 제 2황자 알베르트의 군세를 격파, 올트로스 진영에 대항할 만한 무력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. 그러나 한 번 패배한 군나르 황자와 알베르트 황자도 공동전선을 펼치며 두 진영에 대항하였다.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은 두 진영과, 최대 규모의 군세를 갖고 있는 1개 진영에 의한 '''"3파전"'''이라는 전황의 추이 - '''《사자전역》''' 발발로부터 2년이 지났으나, 내란은 혼미와 격화의 외길을 걸었다. 제국은 그야말로 나라의 이름처럼 '''"암흑'''(에레보스)'''"'''에 잠식되고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